만나고싶었습니다

Q1. 안녕하세요. 첫 번째로, 근황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1982년도에 서울대학교 공학계열로 입학을 했고, 힘든 시기여서 그 때 다들 그랬지만, 운동권으로 가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의 같은 경우는 고3때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접 현장에서 보았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도 그런 쪽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죠. 3학년 올라가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공 공부를 시작했구요. 86년도에 석사 과정에 진학 후, 연이어 박사과정까지 다 마치고 95년 2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중간에 군대를 다녀왔고, 그 이후에 독일 아헨공대 결정학 연구소에 포스닥으로 가서 1년 6개월 정도 있다가 96년 3월에 대전에 있는 과학연구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입사하게 되었죠. 거기서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연구를 했습니다. 그 때 출연(연) 연구자로서 계속 연구를 한다는 게 어려웠습니다. 자기가 직접 연구비를 따 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연구비를 따서 연구를 하더라도 계약은 되어 있지만 매년 연구비가 깎였습니다. 이러한 정부연구개발 사업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의문점을 풀기 위해 15년 정도 연구를 한 후 2011년 부터하고 한국연구재단에 가서 전문위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과학기술 연구행정과 연구정책에 대해 눈 뜨게 된 계기입니다. 그리고 당시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2012년에 국가 과학기술위원회가 정부내 상설위원회 조직으로 만들어졌는데 위원장님이 바로 저희 과 은사님이셨던 김도연 교수님이었습니다. 그 때 2년간 같이 일하면서 국가 R&D에 대한 정책, 예산, 평가 이런 모든 부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죠. 국가 전체의 R&D에 대해 눈을 뜨게 됐고, 거기에 대한 나름 저만의 시각이 만들어졌습니다. 2년간 활동을 마치고 복귀해서 부원장을 하고, 이번에 원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Q2. 1982년도에 입학을 하셨는데, 그 때 학과명이 지금과는 달랐다고 하던데요.
82년도에는 공학계열로 입학했고, 1년이 지난 다음에 과 배정을 했습니다. 83년도에 무기재료공학과로 변경되었어요.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에 고르게 되었죠. 그 당시에 콜롬비아호와 관련된 신소재 연구 등 신소재에서 붐이 일어나는 초창기였습니다. 그래서 무기재료공학과를 결정했죠. 


Q3. 신소재 트렌드가 열리는 시점에서, 길이 있겠다 하는 생각에 결정하신거군요.
그렇습니다. 83, 84, 85학번 후배들은 굉장히 훌륭한 친구들이 입학했지요, 공대 전체 내에서 랭킹이 막 올라갔죠. 수직상승해서 1, 2등을 다툴 정도가 되었죠. 


Q4. 당시 기억나시는 은사님이나 친구와 관련된 추억이 있나요?
허허 뭐가 있을까요. 제 지도교수님은 정수진 교수님인데요, (이하 정교수님)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조금 늦게 저의 과로 부임해 오셨어요. 대학원을 정할 때는 실제로 젊은 교수님들이 몇 분 계셨어요. 김도연교수님, 유한일교수님, 김형준교수님 등등 계셨는데, 다른 분들은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셨어요. 한선생님으로 학생들끼리 몰리면 안 되니까 모여서 적절히 대학원을 정했어요. 저는 정교수님이 하는 결정학이라는 과목을 잘 하지는 못했어요. 근데 이상하게 가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 자연스럽게 정교수님께 가게 되었죠. 그리고 또 하나는, 학부 2학년 때 데모가 심했는데, 제가 수업을 빼먹고 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수업하고 있는 곳을 지나갔어요. 나중에 들은 바로는, 거기 교수님이 동기 친구들에게 ‘저기 보라고, 공부 안 하고 저러고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분이 김도연 교수님이십니다.(웃음) 졸업 이후로도 김도연 교수님께 많은 도움도 받고, 하고 자주 만나가지고 국가과학위원회 시절에는 같이 일하였고, 지금은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이자 은사로서 남아있습니다.


Q5. 저도 연구소에는 처음 와봤는데, 간단히 연구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연구 단지가 1975년도에 설립되었지만 그 이후로 이 지역이 개발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연구단지에 저희 연구소가 다른 연구소들보다 제일 먼저 입주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실제로 유성구에서 밖에 올 수가 없었고, 지금 엑스포쪽은 길이 없었고(90년 초에 개발) 그래서 유성쪽을 통해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유성구 쪽에서는 이곳이 제일 끝 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오니까 넓은 면적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 당시 연구원에 있는 행정실장님이 지방에서 제일 좋은 지역이 이 지역이라고 선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으로 왔는데, 지금은 아마 출연연 중에서 가장 멋있는 조경을 갖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 측정 표준개발, 유지 그리고 확산을 기본 미션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일의 일부가, 옛날로 말하자면 도량형에 관련된 일입니다. 


Q6. 원장님으로 취임하시게 되었을 때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만들어진 지 50년 정도 되었기 때문에 연구소 내에서 그 동안 해왔던 것들이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것은 수월성과 관련이 되게 됩니다. 축적되어야 새로운 것들이 나오잖아요. 저는 우리가 현재 수월성 측면에서 부족하니까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노력해 나가야겠다 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다양한 갈등들이 많습니다. 이를 완화해서 한 방향으로 목적을 가지고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것이 생각했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앞으로 50년, 100년을 향해 가려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 세계적으로 최고인 측정표준과 측정과학 연구소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Q7. 부임하시고 나서 중점적인 추진 과제나 미션 수행에 대한 플랜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저희 표준연구소 하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시는 게 보통 있죠. 길이에 관련된 일, 무게에 관한 일, 질량에 관련된 일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일들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연구소에서 국민들에게 ‘우리가 이걸 하고 있습니다’ 하고 한 번 들었을 때 강하게 인식되는 것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에트리(ETRI) 그러면 CDMA 기술이다. 원자력연구원이면 소형원자로 기술 이렇게 연구소를 대표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다른 연구소들은 이렇게 연구소를 대표하는 기술들이 많은데, 저희 연구소를 생각하면 딱히 생각나는 기술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일상 생활에서 상거래를 할 때 도량형등의 기준이 사용되듯이 산업적으로 정확한 기준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국민들은 실제로 느끼지 못하지만 누리고는 있죠. 그런 일들을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희 연구소를 대표하는 기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에 양자컴퓨터로 많이 알려진 양자에 관련된 일, 양자 측정기술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표준연구소를 대표하는 기술로 키워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Q8. 이런 분야를 표준과학이라고 한다고 하는데요.
그렇죠. 표준과학연구는 크게 두 가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측정을 하는데 있어서 표준을 정하는 것이죠. ‘이게 정확히 27.5g 이네’라고 정확한 표준을 설정해 주는거죠. 또 하나는 이런 표준을 정하기 위해서는 정밀하게 측정을 해야 하는데, 새로운 개념을 가진 장비를 가지고 측정을 하면 이것보다 훨씬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즉 측정과학입니다. 측정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들이 들어오면 피드백이 되면서 측정 표준화를 할 수 있죠. 이렇게 측정표준과 측정과학, 이 두 분야가 쌍두마차처럼 되는 것입니다. 측정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측정과학으로 하고 있고, 이게 표준으로 와야지만 국민들의 실생활에 연결이 되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산업적인 응용과 더불어 국민들의 삶의 질과 안전에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후쿠시마에서 물고기를 수입을 하잖아요. 물고기에 있을 수 있는 방사능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죠. 이로 인해 국민의 안전한 삶을 통해 삶의 질이 높아지게 하죠. 그리고 대형교량에서 바람이 불고 흔들리는 경우, 측정을 통해 교량의 안전도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 쪽으로는, 혈압계의 경우 잴 때 마다 결과가 다릅니다. 이를 보완하고 정확히 잴 수 있는 혈압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죠. 이렇게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안심 삶의 영역을 확대해 줄 수 있습니다. 


Q9. 표준 과학이라는 것이 4차 산업 혁명의 패러다임을 맞이해서 그 흐름에서 중요해지는 역할이죠?
아주 정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하고 있는 측정 표준에 관련된 많은 일들이 있잖아요. 이런 일들은 정확하게 제조업 중심의 3차 산업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철강 쪽에 아주 필요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점점 제조업 중심사회에서 점점 데이터 중심사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문제가 되는 게 데이터의 퀄리티이죠. 그래서 데이터의 퀄리티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딥 러닝이나 머신 러닝에 들어가는 여러 프로그램들의 성능, 그리고 이들의 안전성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죠. 표준 연구과학연구원은 산업에서의 주로 기반기술에 관련된 일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이에 기반기술인 정확히 데이터를 측정하고 안정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연구를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Q10.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숫자적인 데이터에서 나아가 2차원 데이터, 좀 더 나아가 동영상 데이터. 이것들을 어떻게 정확하게 측정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Q11. 이런 것 관련해서 준비하는 팀이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지금 시작했습니다. 연구소 차원이 아닌 국가적으로 필요한 것을 모으고 있습니다. 조만간 정책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을 발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논의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Q12. 리더로서 이 자리에 계시는데, 리더쉽이란 무엇이고, 또는 리더가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질이무엇일까요?
리더와 매니저의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리더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비전을 갖고 사람들로 하여금 같이 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과정을 하는 사람이죠. 매니저는 비전보다는 주어진 상황 안에서 잘 매니징 해서 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리더는 비전을 제시해 주는 사람인 것이죠. 


Q13. 공대 후배 분들이 많은데, 후배분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나 조언이 있으신가요?
저는 30년 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때는 전공만 공부 했었습니다. 4년 또는 6년 동안의 공부가 일생을 좌우하는 그런 프로세스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대학 4년동안 전공만 공부했다면, 사회에 나가서는 솔직히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요즘에는 교육 환경이 좋아졌고 다양한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가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교에서 어느 정도 해야겠지만, 본인도 항상 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상황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 박사 학위를 위해 계속 공부를 한다면 하나의 학위가 되겠지만, 점점 박사 학위 2개가 자연스러워지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분야와 다른 분야의 융합이 중요해지는 사회. 그렇기 때문에 타 분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재료과 같은 경우 우리 때는 재료과 공부도 했고 수학과나 물리과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그건 자연 과학 내에서 재료 과학을 잘 하기 위해서 그쪽 분야의 공부를 한 것이지만, 지금은 자연, 사회, 인문과학을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Q14. 동문분들께 홍보하고 싶다거나 협력을 요청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저희 연구소에서 하는 일들이 결국 표준화 관련된 것입니다. 산업적 응용으로는 기존 3차산업, 제조업 중심의 모든 일들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과는 측정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함께 풀어나갈 자세가 되어있기 때문에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 이외에도 저희가 표준과 관련해서 국제적으로 협력이 진행되는데, 국제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저희 연구소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시면 언제든 환영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Q15. 공대 입장에서도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고 있는데요. 공대 교육이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고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가요? 
지금 들어오는 선임 연구원들이 자기 분야에만 집중해서 연구를 하거든요. 그런 것 보다는 조금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적으로 조직이라는 게 하나의 사회이기 때문에 여기 와서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단순히 자기가 최고이고 자기만 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벗어나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형성할 수 있는 능력에 신경 썼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연구가 혼자 할 수 있는 연구는 없거든요. 항상 다른 사람하고 같이 일하거나 공동 연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것들을 대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16. 동문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가 82년도 입학했을 때 아마 공대 학장님께서 공대 캠퍼스,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공대 동문임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구요. 저희 학번은 공릉동 캠퍼스에서 다녀보지 못하였지만 사진에서 본 멋있었던 캠퍼스의 모습에서 저는 서울공대인으로서 지금까지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서울 공대 동문들이 서울대 공대의 자부심과 하나라는 마음가짐으로 조금 더 단결하고 화합하는 모습들을 향해 나아간다면 더욱 발전된 서울대 공대와 동문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19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많은 동문 분들이 이 상황을 잘 극복하고 건강하실 수 있도록 기원하겠습니다.